최근 많은 생각을 했던 주제는 그거다. 내 영혼의 결 찾기.
내 에고, 자의식, 현재의식, 뭐 아무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인간 문명 시스템을 따라 프로그래밍 된 나의 한 측면이, 갖고싶다고 생각하는 것,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 영혼이 진정으로 바라는 길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 대부분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들이다. 예전에는 "이것만 가지면 더 편안해질거야" 혹은 "행복해질거야" 에 가까운 욕망이었다면, 지금은 "이것이 나를 나타내는데 도움이 될거야" 와 흡사한 욕구다. 이 또한 자아, 에고, 자의식 아무튼 그 친구(이하 대충 에고라고 부르겠다. 그렇게 부르기에는 뭔가 아쉬운 감이 없지않아 있는데, 대체할 단어가 없다.)의 욕망에 가까운것이라 여기고 적당히 무시하거나 충족시키거나 하며 한동안 살았는데, 이게 놀랍게도 만족도가 아주, 꽤나 높은 것이다.
내가 나의 결과 맞다고 여겨 고르는 것들은 모두 깊은 충족감을 불러왔고, 이것은 상당히 희소하고 재미있는 감각이었다. 이것을 사용하고 있는 나를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고,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애티튜드나 전체 착장, 주로 활동하는 공간의 TPO 등 외부적 환경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나의 마음의 깊은 끌림이 가는 것들만 골랐다. 대충 내역은 이러하다. 화려하고 요란한 디자인의 폰 케이스,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의 의상과 가방들, 필기감이 아주 뛰어난 검정펜 한무더기 (만년필도 더 사고 싶었는데 종이고르는 폭이 좁아져서 있는 것들만 소장 하기로 했다), 아주 많은 노트, 어렸을 때 많이 썼던 아주 두꺼운 연습장, 수십권의 책(이놈의 책들은 사놓고 안읽고 있어도 만족스럽다) 등등.
그러다보니 깨달음이 왔다. 지금까지 내가 결핍이라 믿고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못받은 사랑도 아니고, 불우했던 학창시절도 아니고, 실패한 연애경험들도 아니고, 스쳐지나간 인간들의 비난과 비판도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게 있긴 했었겠지만 이제는 없다. 있긴 했었겠지만, 수행 정화 뭐 하여튼 기타등등으로 많이 메꾸고 거의 다 회복했다. 이제 남은 내 결핍은 그런 결핍이 아니었다.
내 결핍은, 결국은 지 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아가는 주제에, 에고가 만들어 낸 목표를 진짜 인생의 목표라고 믿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데서 오는 결핍이었다. 에고가 만들어 낸 사회적 표상들 - 그러니까 많은 연봉, 부, 사회적 성공 등등 - 을 내 삶의 성공척도에 둔 것이 잘못이었다. 세상에 실패한 인생은 없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퀘스트를 달성해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나의 깊은 공허감을 불러왔던 것이었다. 세상에 실패한 인생은 정말로 없는데도.
이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영성적으로 고도로 발달하면 현실에서도 아주 큰 부자가 되고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틀렸는지 맞는지는 감히 알지 못한다. 거기까지 가 봤어야 알지.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시야를 좁게 만든다. 지금 내가 덜 가지고 못가진 것은 영적인 영역의 문제일거야, 지금 내가 이 고통을 탈출해 상위단계(사회적 지위든 금전적인 것이든)로 이동하려면 더더욱 영적으로 성장해야 해 등등. 애매하게 맞는 말 같은데, 애매하게 관점이 물질과 성공에 치우쳐있는 잘못된 상을 자꾸 만들게 한다. 영성을 위하여 수행하다 보면 집착심이 사라지고 의식의 폭이 넓어지며 인과와 우주의 섭리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고, 그로인해 그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져 선택과 기회의 폭이 늘어날 수 있어도, 이것을 "영적인 것을 통해 부자가 되자!" 라고 축약해버리면 너무 어폐가 심하다.
아무튼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벗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에고가 발악을 한다. 아니야, 나는 성공해야 해, 아니야, 나는 큰 부자가 될거야, 아니야,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것 다 가질거야 등등. 거기다가 애정이나 인정에 대한 결핍을 몇방울만 섞어줘도 이제 커다란 광란의 폭풍같은 것이 된다. 마치 내가 이것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못 이룰 것 같고, 실패를 긍정하는 인간이 되어 평생을 자기합리화 하며 살 것 같고, 나 빼고 다른 인간들은 그것을 다 가지게 되어 나 혼자 열등해지고 도태될 것 같고.
어느 날이었나, 기억이 선명하다. 출근했던 토요일 밤, 집에 와서 가방만 던져놓고 뛰쳐나가서 강가에서 운동중이었는데 그런 깨달음이 왔다. 아, 내가 여기서 한 발짝 더 성장하려면 이제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의식을 깨부술 때가 왔구나. 그 어디에도 옳고 그름은 없으니,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 삶의 방식, 내가 추구하던 것들을 다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가 왔구나. 나의 자아-에고-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 그것이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 아니라, 그냥 잘게 빻고 다져서 가루로 만들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내버려둬야 될 때가 왔구나.
예전에도 그런 때가 있긴 했다. 그 때는 그 자의식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결국 처참하게 깨지고 좌절하게 되었다. 수복하는데 몇년이 걸렸다. 아마 쓸 데 없는 저항을 하느라 일년을 날렸고, 그 고집 피우던 것을 수습하는 데 2년 가량 걸렸으리라. 그 때도 참 여러 탓을 했던 것 같다. 장소 탓, 시기의 탓, 사주 탓 뭐 등등. 그러나 돌이켜보면 다 자업자득이다. 자꾸 내가 이것은 틀렸고, 맞지않고, 이래선 안되고,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고, 하면서 저항하고 버티다보니 찾아왔던 고통들이었다. 헛된 움켜쥠들, 그것을 움켜쥐겠다고 혼자 아둥바둥 해 봐야 저것이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힘만들고 상처만 많아질 뿐인데.
그래서 몇 주간, 자의식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를 0으로 돌아킨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고, 어떠한 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그 이상한 아집 같은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거의 퇴마에 가까운 수준으로,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뭔가 무거운 것이 사라지고 나면 상쾌한 쾌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이번의 것은 쾌감보다는 원래 그러했던 것으로 돌아왔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그러고 나니 내가 이제 내 영혼의 결이 무엇인지, 영혼이 뭘 좇고싶어 하는지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욕구와 욕망이 아닌 소원을 찾게 된 것이다. 내가 어떤 빛깔로 살아갈지, 내가 이번 삶에서 무엇을 이루고 떠날지에 대한 진짜 소원을 찾고 내 삶을 어떻게 어떤 결로 흘러가게 할지 알아보는 작업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걸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걸렸지, 하루? 이틀? 정말 멀리 있지도 않더라. 남들이 들으면 너무나도 뜬금없고 어이없는 소원일 수도 있는데, 아주 어렸을때부터, 거의 태어났을때부터 간직해온 꿈같은 거였다. 뭘 더 가져야한다, 더 얻어야 한다, 더 이뤄야한다 끊임없이 소리치고 괴롭히는 자의식이 조용해지고 나니 (그러고보니 이자식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선명하게 보였다. 아 결국 나는 이것을 해야하는구나, 그래야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해지겠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는 이 찾아낸 따끈하고 반짝반짝한 것을 예쁘게 빚고 광을 내야 한다. 쉬워 보이지는 않는데 별로 겁은 안난다. 근데 남들한테 말해봐야 산통깨는 소리 들을까봐 뭐 딱히 어디 말할 것 같지는 않음. 더더군다나 요새는 상호작용하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일이 많아져서 상대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해도 느껴지는 그 부정적인 바이브를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그 새로 찾아낸 내 영혼의 결을 채우기 위한 일들을 많이 했다. 새로운 장비를 마련하고, 시작을 했다. 뭐부터 해야될 지 모르겠어서 일단 닥치는대로 시작해봤다. 마음이 후련해지고 돌아와야 할 곳으로 드디어 돌아온 느낌이다. 다만 이제 내가 너무 어른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그 곳이 너무 작고 협소하게 느껴지는 게 문제지만. 신경계가 전율하는 감동을 이렇게 깊이 느껴본 게 10대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참 여러번 끊임없이 밀려온다. 산다는 것이 참, 매일매일이 신비롭고 기적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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