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는 생각은, 오컬트를 하든 수행을 하든, 영성과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통찰력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현상이나 인생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이 모든 작업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동력이 되는듯.
운 좋게도, 어쩌면 운이 나쁘게도 어렸을 적 부터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고 삶과 관계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것은 자기검열과는사뭇 다르고 타인과 사회에서부터 요구당하는 어떤 틀에 스스로를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과도 다르다. 한 때는 그것들과 비슷한 색을 띄기도 했는데 길고 깊어질 수록 그 경로를 달리했다. 수행이 길어지고 내면이 정돈되고나니 스스로의 결점과 추악한 부분을 인식함에 고통이 사라졌고, 더러는 교정하고 더러는 수용하면서 내 마음에 안드는 부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이런 과정이 몇 년, 몇 십 년이에 이르게 되니까 이제 스스로의 내면의 작은 변화를 인지하는 것에도 기민해졌다. 이게 어떻게 보면 '에너지에 대한 민감도' 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것과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면이 있긴 하다.
아무튼, 계속 수행을 하고 영적 작업을 해나가면서 마음이 지치고 시들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인듯. 신비로운 체험은 그저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고, 그런 체험들 보다는 내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인지하는 힘 덕에 몇 년이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의 사소한 변화가 가져오는 커다란 현실을 인지하고 겪는 일을 수차례 하다보니 당장 공효가, 가피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내 마음가짐 하나 조금 달라진 것만으로도 깊게 감사하게 되고 삶과 스스로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며 마음의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통찰력을 기르는 가장 심플한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해봤는데. 역시 책읽기 아닐까 싶다. 그것도 인문학 위주로, 아주 많이. 태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할때 즈음부터 한글을 익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책에 몰두해서 다 보냈는데 그 때의 밑천으로 지금까지 특정부분에서 대단히 유리하고 편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아웃풋하기. 참 글도 많이 썼는데, 한동안 다른 일로 먹고 사느라 멀리했다. 그러나 지금도 진득하게 앉아 글로 옮겨야만 구체화 되는 사고와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절대 놓을 수가 없다. 잘쓰고 못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고 그 뿌리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 속에서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서 글은 항상 써야한다. 타고난 반골기질때문에 어떤 일에 의무감이나 죄의식을 느끼게 되면 금방 싫증을 내게 되기에 이것만큼은 어떻게든 끝까지 쥐고 가려고 발버둥쳤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삶에 흡수되어 생각할 거리가 조금만 있으면 앉아서 펜을 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문장으로 쓰든 글자로 쓰든 그림으로 그리든 종이에 형체화 시켜서 나열하다보면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객관화되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 어쩌면 통찰력이라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야기가 길었는데.
요새는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 이 생각하는 힘, 구체화 시키는 힘을 어떻게해야 명료하고 힘있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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