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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월요일 밤 8시

DIARY

by 나이트플로우 2024. 1. 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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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지독하게 바빴다. 2월 중순까지 여유롭게 잡혀있던 일정이 갑자기 몰아쳐서 저번주 내내 갈려나가다 어제 일요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오늘에서야 끝났다. 상대가 나라에서 제일 큰 클라이언트다보니 배째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죽어라 달렸다. 사람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급박하니 욕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여튼 오늘로 끝. 아직 외주랑 기타 등등 잔뜩 남아있긴 하지만 정말 급한 불은 당장 껐으니 오늘은 릴렉스 할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사태를 초래한건 아무래도 동료 마녀 S가 만든 밤balm 때문인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같이 사용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정신을 못차렸다. 한 주가 폭풍처럼 지나가버려서 우리끼리 모여있는 단톡방도 일주일 내내 조용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 마법 밤이 이상할정 정도로 기력을 넘치게 했고, 머리도 말끔하게 만들어 두뇌회전속도를 올려줬으며 의욕도 불어 넣어 줬으니까. 아무튼 끝냈다. 의외로 그렇게 달렸는데도 끝나고 나서 기진맥진 하지도 않고 분노가 남아있지도 않다. 개운하다. 다만 긴장해서 뻣뻣해졌던 두피와 어깨 때문에 지금 목에 담이 걸려서 좀 죽을맛이다. 지금 밀려있는 외주만 끝내놓고 나서, 한번 더 써야지.

이 밤의 좋은 점이 단순히 일만 불러오는 게 아니란 것이다. 지난 일주일 간 몰아친 외주문의가 벌써 1월급 수준이다. 원래 문의가 들어왔다가도, 금액대가 좀 있다보니 제대로 성사되지 않고 그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100% 확률로 성사가 됐다. 일복이 터져나가는데 일한 만큼, 아니 그거보다 조금 더 돈이 들어오게 되어서 지금 스케줄 짜면서 눈물이 좀 나는데도 입은 웃고있다. 프리랜서였을 때 이런 걸 만들어 줬었다면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까 하고 원망 아닌 원망도 조금 들 정도. 아무튼, 재밌었다.

마법 오일이든 마법 밤이든,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개인의 의식변화를 넘어서서 사용자의 외부환경과 현실을 개변할 수 있는 듯 하다. 비교적 에너지 레벨이 약한 것들은 기분을 바꾸고 마음가짐을 바꾸는 정도로 작동한다면 강한 것은 사용자의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한 환경과 상황까지도 불러오는 것 같다. 국내외의 많은 제작자들의 수 없이 많은 오일들을 써보니 그렇다. 그렇다면 그 ‘강한 에너지를 담은 물건’ 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마법 아이템, 마법 오일 만들기에 내 나름의 공식이 있다. 여러 제작자들의 제작기나 글에서 읽은 것도 있고,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마법오일의 작동 기전은 1. 상응성, 2. 향, 3. 기도 라고 생각한다. 상응성은 각 허브나 원석, 오일들이 가지고 있는 행성적 원소적 에너지를 조합해 공식을 만드는 것이고, 향 또한 마찬가지. 향으로 상응성을 맞추기 위해 프레그런스를 사용하는 제작자도 제법 많았다. 나는 대부분의 레시피에 에센셜 오일을 상당량 쓰기 때문에 이미 자기주장이 아주 강한 향을 갖고 있어서 여기에 어떻게 조향해야 할지 감도 안와서 프레그런스에 아직 손대진 않았지만, 다음번에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도.

기도도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한다. 첫번째는 에너지 충전의 개념, 그리고 두번째는 사용자의 복됨을 기원하는 마음. 상대에 대한 순수한 호의와 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물건은 효험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이것으로 부귀영화를 이룰거라던가, 입소문으로 대박이 나 자신이 유명해지겠다던가 하는 욕심과 거리가 아주 먼, 아주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 같은 것.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단어가 영 낯간지럽다.

아무튼, 마법 오일은 누가 만들든 작동은 한다. 그 상응성만 맞으면. 그런데 그 에너지의 선함과 강함은 제작자의 순수한 의도에서 나오는 듯 하다.

그간 국내외의 다양한 아이템 제작자들을 만나봤다. 원석팔찌부터 시작해서 마법오일, 염주, 신상과 그림 등등. 그들도 다 인간인지라 인생사에 울고 웃고 분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은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했고, 가끔은 우울함에 젖어서 외로워하기도 했다. 성격의 장단점도 확실해 마냥 좋은 사람만도 아니었으며, 가끔 급하면 무단횡단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연락 하나에 안절부절 못해 하기도 했다. 걔중에서 정말 강력한, 선하게 작동하는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의 물건을 만들 때 만큼은 그 물건과 인연이 닿은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동료마녀 S의 순수한 의도가 뭐였는지 알 것 같다. 정말 지인들끼리 딱 나눠 가질 만큼의 밤을 만들면서, 그들의 행운을 빌며 받는 이의 복됨을 진심으로 바랬을 것이다.

참 어려운 문제 같다. 제작자들 중에는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았지만 갈 수록 돈에 눈이 멀어간 사람도 있었고, 그냥 매사가 거짓과 기만과 망상에 찌들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과한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었고 남 흉보는 것과 없는 말 지어내는 것을 소일거리 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영성을 논한단 말인가 하고 실망도 정말 많이 했고, 반대로 정말 맑고 반짝반짝 빛나며 선하고 올곧은 사람도 많아서 스쳐지나간 인연이었지만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중요한 건, 결국 누가 만들던 아이템은 작동했다. 다만 그 방향성과 결말이, 만든 이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나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있는가. 과연 내 욕심, 내 사적인 감정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만들고, 기도하고 있는가. 가끔 기도와 수행을 하다보면 마음이 맑게 개이며 밑바닥에서부터 사랑이라고 밖에 칭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신성한 감정 같은 것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담아보고 싶어서 몸의 감각으로, 머리로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그렇게 애 쓸수록 그것은 더 빨리 사라져간다. 내가 만드는 것, 내가 그리는 그림, 내가 하는 모든 작업에 그 감정을 담고싶다. 완벽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순수하고 신성한 감각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나 이 또한 애 쓸 수록 더 멀어질 것을 알아서, 그저 겸허한 태도로 스스로를 끝없이 비우며 꾸준히 뭔갈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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